헤세드의(hesed)라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인데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은혜’, 불변의 ‘사랑’, ‘인자’, ‘인애’, ‘자비’, ‘선대’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찬송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닷물을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 만은 못 하지만 그래도 사랑과 인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즐겁고 따뜻한 정이 있어 삶에 희망과 용기가 솟아난다.

요즘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긴장하고 관련 뉴스는 항상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뒤따르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바로 손 세정제와 마스크의 사재기다. 며칠 전 마스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값이 올랐으려니 생각했는데 전에 산 가격과 같았다. “아니, 요즘 마스크가 품절이라 2, 3천 원씩 한다는데 싸게 팔아요?” 하니 주인은 “원가가 싸게 들어온 것이라 이 정도로 판매해도 되요.”한다. 그러면서 “적당 가격에 팔아야지 무슨 떼돈 벌겠다고 값을 올려요?” 하고 반문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며칠 전 본 뉴스가 생각났다. “100억 원을 줄 테니 마스크를 모두 납품해 달라”, “현금을 얼마든지 지금 줄테니 만드는 대로 마스크를 달라”등 꼭 범죄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들이 마스크 공장 앞에서 서성거리는 구매업자들을 배경으로 뉴스 화면은 이어 갔다. 이어 모 마스크 제조업체의 사장이 “우리 회사는 절대로 값을 올리지 않겠다”라는 당당한 모습이 뒤이어 비쳐졌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재기 행위가 있어 이를 방지하고자 정부는 관련 물품의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하며 사재기를 단속한다고 발표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조치이다.

셰계인이 긴장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불안해하는 이때 그 당당한 사장님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공급이 달리면서 수요가 많으니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수요를 빙자해 자신만이 이득을 취하겠다는 것은 모든 인류에게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 나라에서는 마스크가 부족해 페트병과 비닐 물통, 배춧잎과 자몽 껍질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다는데 안쓰러운 마음을 갖기는커녕 남의 나라까지 와서 싹쓸이를 해간다는 정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원가가 쌌기에 적당 가격에 판다는 편의점 주인과 마스크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그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남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씁쓸하다. 노자(老子)는 “내 몸과 재산 중 어느 것이 귀중하냐?”고 물으며 “多臟必厚亡 知足不辱(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잃게 되고 만족할 줄 알면 굴욕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의 불행을 기회 삼아 불의한 이득을 얻음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마음은 편할까?

자린고비의 전설 모델인 충북 음성 금왕면의 조륵(趙玏)이란 분처럼 평소에 구두쇠였지만 가뭄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재산을 베풂은 이웃을 사랑하는 헤세드 정신이다. 또한, 유명한 제주 여상인 김만덕(金萬德)은 육지에서 사온 쌀을 기근이 닥친 제주도민을 위해 진휼미로 기부하여 백성들을 구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동전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학생들이 용돈을 모아 경로당을 방문하고, 겨울철이면 각종 단체와 모임에서 연탄 기부로 이웃을 돕는 등 소식을 보면 역시 우리 민족의식이 높다고 자부심을 가져 본다. 모두 인류를 사랑하는 헤세드이다.

돈다발을 싸 가지고 와서 싹쓸이해 가는 저들이 어느새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약점인 사재기를 알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면서 일부의 일탈이 그들 모두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숨을 바친 리원량이란 의사에 대한 추모의 물결을 보며 인류애를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민족의 힘이 있다. 태안 바닷가에서 기름 묻은 조약돌을 닦았고, 뜨거운 포장도로 위에서 “대한민국”을 외쳤으며 어려울 때 나눌 줄 알고 힘들 때 도울 줄 아는 민족정신이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병마와 싸우는 많은 환자를 위해 밤잠을 설치는 의료진, 방역진, 그들 뒤에 업무를 보조하는 많은 숨은 봉사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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