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이었던가,  외출하고 돌아오니 집안이 공사장으로 변했다. 화장실, 거실 할 것 없이 벽과 가구를 뜯어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2~3년 전부터 집안을 “리모델(remodeling)”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던 아내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물론 필자는 그냥, 있는 대로 살자는 입장이었지만...... . 며칠의 불편을 감수하고 공사가 끝났다. 바뀌어진 화장실, 주방(개수대, 찬장, 조리기구 등), 거실 등이 보기도 좋고 새집에 이사 온 기분이다. 그러면서 며칠간은 이웃집 분들이 와서 살펴보고 가기도 했다.

“이왕 사는 거 보기 좋고 편리하게 살자”라는 아내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안을 개·보수하기 귀찮아하는 것은 아마도 긴 세월 속에 굳어버린 타성일게다.

나이가 들어가니 만나는 친구들마다 세월이 빠르다고 한다. 가는 세월을 가장 쉽고 빠르게 알게 되는 경우는 아침마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거울을 볼 때이다.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내가 어느새 이렇게 변했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나 같지 않음에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다. 시인 이상은 「거울」이라는 시에서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라고 했다. 조용한 소리 없는 세상 속의 얼굴은 더욱더 내가 아닌 남의 얼굴이다.

머리카락뿐이 아니다. 눈썹까지도 하얘져 간다. 그러니 텔레비전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어느 한 장면의 등장인물 같기도 하다. 아내의 성화(成火)에 염색약을 사서 머리카락 염색도 몇 번 했다. 머리카락뿐이랴 눈썹까지도 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검게 변하니 좀 젊어 진듯하기도 하고, 왠지 친근감이 있다. 지금까지 지내 온 내 모습이기도 하다. 리모델의 효과이다.

그런데 이 리모델의 효과가 한 두 달 지나니 더 추(醜)한 모습을 보인다. 자라 올라오는 털들이 하얘서 계속적인 리모델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가렵고, 약품의 영향인지 시력도 약해지는 듯 하고, 옷에 묻은 검은 얼룩은 잘 지워지지도 않고...... .

거실은 리모델 하니 새집같이 오래가는데 사람은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면 곳곳에 리모델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의회에서는 4년 내내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보완하는 일을 하는가 보다. 시행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좀 더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일게다. 그런데 가끔 전해지는 뉴스를 보면 A당이 제시한 법령을 B당은 반대하고, B당이 제시하면 A당이 반대하는 것은 각자의 리모델 기준이 달라서인지 아리송하다. 그들 말 대로 국민을 위해 제정하고 바꾼다는데 왜 그런지...... .

가끔은 여론조사용 전화가 걸려온다. 법령 제정·개정도 여론조사를 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참에 한마디 건의하고 싶다. 여론조사도 리모델 해야 한다. 필자도 그랬지만 친지들도 경험을 여러 번 했단다. 바로 나이를 묻는 과정에서 65세 이상이라고 하면 ‘다음에 연락하겠다“라고 하며 더 이상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뉴스에서는 모 당의 국회의원 후보자가 나이를 젊다고 하고 조사에 응답하라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여론조사 기관은 이 부분도 리모델해서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는 늙음의 서러움이 없도록 해주어야 한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래서 필자는 여론조사 통계를 믿지 않는 편이다.

리모델 시대에 화장실만, 거실만 리모텔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환경 –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리모델 할 것은 하고, 하지 않을 것은 지켜나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쾌적한 자연과 생활 환경 속에 하얘진 머리카락과 눈썹을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노년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3월이다. 3월이면 항상 희망을 품는다. 학교도 한 학년씩 진급한다. 초목이 싹이 돋으니 보이는 천지의 푸른색 속에서 희망을 갖는다. 이제 다음 달 10일(수)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정쟁으로 얼룩진 지난 4년의 의정활동을 벗어나 새롭게 리모델 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제22대 국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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